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1979년 작품 <복수는 나의 것>은 일본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며 철학적인 범죄 드라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단순히 살인자 한 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일본 사회의 억압적 구조를 거울처럼 비추는 작품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연출 스타일,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1960~70년대 일본 사회의 배경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 영화를 자세히 분석해보겠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시선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 누벨바그의 대표적 감독이자, 인간의 가장 밑바닥 본성을 탐구한 연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기존 일본 영화계가 추구하던 미학적 정제나 도덕성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욕망, 본능, 억압, 그리고 사회적 잔혹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태도를 지녔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 역시 그런 그의 세계관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에노키즈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을 '사회적 존재'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동물'로 묘사합니다. 이마무라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인간은 본래 동물이며, 문명이나 도덕은 얇은 막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에노키즈가 저지르는 일련의 범죄 행위들은 그 자체로 잔혹하지만, 단순히 악행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의 배경과 환경이 너무나도 절망적입니다. 이마무라는 이를 통해 ‘범죄는 구조의 산물’이라는 시각을 관객에게 강하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철학은 영화의 연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감정 과잉의 음악을 배제하고, 장면 전환은 종종 무감각할 정도로 차가우며, 구도는 안정감보다는 불안함을 조성합니다. 예를 들어 인물 간의 대화 장면에서도 이마무라는 종종 양측을 같은 프레임에 담지 않고, 절단된 화면 구성으로 이질감을 줍니다. 이는 관객이 감정 이입을 하지 않도록 유도함으로써,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더불어 이마무라는 자연스러운 배우 연기를 중시하며, 실제로 이 영화의 대부분은 극도로 현실적인 대사와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본 영화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 배제된 이마무라의 스타일은, 잔인한 장면조차도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이는 관객에게 “이것은 픽션이 아니라,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일종의 경고처럼 다가옵니다.
인간 욕망과 사회 구조
<복수는 나의 것>은 제목에서부터 내포하듯이 ‘복수’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마무라가 이 영화에서 말하는 복수는 단순한 원한의 해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억눌린 감정, 단절된 사회 구조, 인정받지 못한 존재의 고통이 한 인간 안에서 응축되었을 때 터져 나오는 파괴적 감정의 폭발입니다. 주인공 에노키즈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훈육 아래 자라며 감정을 억누르는 법만 배웠고,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학교 교육, 군 복무, 직업 생활 등 어느 곳에서도 그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며, 결국 사회에서 배제된 자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그는 사회에 복수하듯 끊임없는 살인을 반복합니다. 그의 복수는 특정 대상이 아닌, 자신을 만들어낸 구조 전체에 대한 파괴적 저항입니다. 이마무라는 이 영화에서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부터 비판의 대상을 삼습니다. 에노키즈 가족은 겉보기엔 전통적 가치관을 따르는 평범한 가톨릭 가정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적 교류가 거의 없는 침묵의 공간입니다. 어머니는 순종적이며,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무뚝뚝하며, 아들은 결국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일본식 가부장제와 유교적 문화가 만들어낸 억압의 산물이며, 영화는 이를 통해 ‘선량한 가정’이라는 환상을 철저히 해체합니다. 또한 사회 구조 역시 이마무라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국가의 형사 사법 시스템은 개인의 존엄성을 보호하지 못하며, 사형 제도는 냉정하고 무자비한 형식적 절차로만 작동합니다. 에노키즈가 체포되어도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의 행위는 마치 예견된 비극처럼 묘사됩니다. 이는 범죄자 개인의 악의보다, 그를 낳은 사회의 병리적 구조에 더 큰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는 장면입니다.
일본 사회의 이면
<복수는 나의 것>은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 후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일본은 경제적 풍요를 이루는 한편, 도시화와 가족 구조의 붕괴, 인간 관계의 피폐화라는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 겉과 속의 괴리를 섬세하게 포착하여, 하나의 공간 드라마로 완성시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공간의 분열’입니다. 영화 속 에노키즈는 도쿄, 오사카, 시골, 항구 등 다양한 공간을 떠돌지만, 그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합니다. 이는 그가 ‘사회적 소속’을 상실한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이마무라는 이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대부분의 공간을 어둡고 무기력하게 구성하며, 음향조차 절제된 상태로 연출합니다. 공장 굴뚝이 연기를 뿜고, 기차가 지나가지만, 인간은 철저히 침묵 속에 놓여 있는 이 장면들은 당시 일본의 ‘침묵하는 번영’을 상징합니다. 가족 구성 역시 사회의 축소판으로 나타납니다. 에노키즈의 아버지는 전통적 권위의 상징이지만, 그 권위는 자식에게 아무런 보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의 도구로 작용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범죄를 알면서도 침묵하고, 사회 시스템 역시 그를 관리하거나 구제하지 못한 채 사후 처벌만 반복합니다. 이 영화는 단지 한 살인자의 행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사회 전체에 던집니다. 또한 일본 사회의 종교성, 성(性), 억압, 도시화의 그림자 등이 곳곳에 배치됩니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에노키즈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설정, 성매매 여성과의 관계, 무기력한 사형 집행 과정 등은 모두 이 시대의 '정체성 혼란'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이마무라는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풍경으로 그려내며, 영화 자체를 하나의 사회 비평 텍스트로 승화시킵니다.
결론
<복수는 나의 것>은 단지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소외된 인간이 어떻게 붕괴되고, 그 붕괴가 다시 사회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사회 심리극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복수’라는 감정을 단순한 분노가 아닌, 억압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구조적 결과로 해석함으로써, 일본 영화의 깊이와 방향을 전환시켰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을 통해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반드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