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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키즈 리턴'의 청춘과 좌절의 서사 구조

by 지식 마루 2025. 9. 15.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 리턴>(1997)은 일본 90년대 청년들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반복되는 삶의 굴레를 그린 청춘영화의 걸작이다. 영화는 두 고등학생 마사루와 시게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들이 권투와 비행, 야쿠자 세계를 거치며 각자의 길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실패와 좌절에 직면하는 과정을 그린다.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며 청춘의 본질을 탐구한다. 기타노 특유의 절제된 연출, 유머와 허무의 결합, 일상의 리듬을 담은 영상 언어는 <키즈 리턴>을 일본 청춘영화의 새로운 전형으로 만들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청춘의 서사 구조, 좌절과 반복의 의미,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 연출의 독창성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키즈 리턴 포스터


청춘의 방황과 서사적 구조

<키즈 리턴>은 마사루와 시게루라는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들은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권투라는 탈출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마사루는 야쿠자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시게루는 권투 선수로서의 길을 걷는다. 이들의 선택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방향처럼 보이지만, 결국 둘 다 실패와 좌절로 이어진다. 영화의 서사 구조는 단순히 상승과 몰락의 패턴이 아니다. 오히려 반복과 순환을 강조한다. 두 주인공은 도전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좌절 후 다시 새로운 길을 찾는다. 이 과정은 일종의 ‘청춘의 굴레’처럼 그려지며, 청년기의 방황과 불안정을 상징한다. 특히 권투 장면은 상징적이다. 시게루는 훈련을 거듭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계를 드러낸다. 링 위의 싸움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투쟁을 압축한 은유다. 그의 펀치는 상대를 쓰러뜨리기보다는, 자기 한계를 시험하는 행위에 가깝다. 마사루 역시 야쿠자의 세계에서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지만, 조직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점차 몰락한다. 이러한 구조는 청춘을 ‘성공으로 나아가는 직선적 서사’로 보지 않고, 좌절과 반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제시한다. 결국 <키즈 리턴>은 청춘을 끝없는 방황과 도전의 순환으로 그려낸다.


좌절과 반복의 의미

<키즈 리턴>의 또 다른 특징은 좌절의 반복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끝내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 권투에서 패배하고, 조직에서 배신당하고,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기타노는 이 좌절을 단순한 패배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좌절은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는 두 주인공이 패배 후 다시 만나 "우리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는 좌절 이후에도 청춘이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이 반복의 구조는 일본 사회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90년대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청년 세대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시대였다. 안정된 직장과 성공의 서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고, 많은 청년들은 불안정한 노동, 좌절된 꿈, 사회적 무력감 속에서 살아갔다. <키즈 리턴>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청춘의 좌절과 순환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기타노는 좌절 속에서도 미묘한 유머와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때때로 엉뚱한 행동을 하고, 실패를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는 허무와 유머를 동시에 담는 기타노 영화 특유의 미학이다. 좌절은 비극적이지만, 그것을 견디게 하는 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미한 가능성과, 삶 속에 스며든 소소한 웃음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연출과 스타일

<키즈 리턴>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적 스타일이 응축된 작품이다. 그는 절제된 연출과 건조한 대사, 리듬감 있는 장면 전환을 통해 청춘의 허무와 활력을 동시에 포착한다. 첫째, 카메라 워크는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이다. 기타노는 인물들의 일상을 멀찍이서 관조하는 시선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청춘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과장하기보다는, 그들의 방황과 좌절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태도다. 관객은 주인공들의 삶에 몰입하면서도, 동시에 거리를 두고 성찰할 수 있다. 둘째, 음악의 활용이다. 조 히사이시가 맡은 영화의 음악은 경쾌하면서도 쓸쓸한 멜로디로 청춘의 분위기를 담아낸다. 권투 장면이나 일상의 반복적 장면에 흐르는 음악은, 그들의 삶이 가진 무게와 가벼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셋째, 기타노 특유의 유머다. 영화 속에는 폭력과 좌절이 가득하지만, 동시에 엉뚱한 장면들이 삽입된다. 이는 청춘의 삶이 단순히 비극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순간과 작은 웃음으로 채워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유머는 비극적 서사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드는 장치다. <키즈 리턴>은 기타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폭력과 허무를 전면에 내세운 <소나티네>와 달리, 이 작품은 보다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러나 동시에 허무와 좌절의 본질을 날카롭게 드러내며, 기타노 영화의 핵심 주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삶의 반복성을 다시 확인시킨다.


결론

<키즈 리턴>(1997)은 단순한 청춘 성장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방황과 좌절, 실패와 반복 속에서 청춘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탐구한 작품이다. 마사루와 시게루의 이야기는 일본 90년대 청년 세대의 불안과 좌절을 상징하며, 동시에 청춘의 보편적 본질을 드러낸다. 기타노 다케시는 절제된 연출과 유머, 그리고 허무의 미학을 결합해 청춘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청춘은 성공으로 향하는 직선적 서사가 아니라,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는 반복의 과정이다. 오늘날에도 <키즈 리턴>은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것은 실패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일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청춘은 언제나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가능성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영화는 청춘을 좌절과 반복 속에서 빛나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로 그려낸 걸작이라 할 수 있다.